
내란의 공간
12·3 비상계엄의 공간을 다시 밟는다.
그곳에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가 있다.
내란의 공간
① 선관위 장악 작전(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보사 작전은 실패하지 않았다
정보사의 작전 성공은 하룻밤 해프닝이 아니다. 군이 헌법기관(선관위) 침탈을 단순 모의했거나 시도했다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작전 ‘실행에 착수’했고 ‘성공’한 국헌 문란이다.

2024년 12월11일 경기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전경.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계엄군이 서버실을 장악했다. ⓒ시사IN 이명익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장악은 계엄군의 가장 중요한 작전 중 하나였다. 이 기관 장악을 통한 부정선거 수사가 2024년 12월3일 밤 윤석열이 선포한 비상계엄의 동기이자 명분이며, 목적이었다. 윤석열은 부정선거를 통해 국회를 장악한 거대 야당이 국가비상사태를 일으켰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대규모 작전이었다. 정보사령부와 육군특수전사령부, 국군방첩사령부 등 소속이 다른 3개의 군과 경찰이 공조하는 형태로 전개됐다. 정보사 소속 요원이 선관위 서버실을 우선 확보하면, 특전사와 경찰이 함께 청사를 봉쇄하고, 방첩사가 정보사로부터 서버를 넘겨받아 부정선거 수사에 착수한다는 계획이었다.
작전은 계획대로 흐르지 않았다. 비상계엄 선포 3시간 만에 국회에서 해제요구안이 의결되며 취소됐다. 공조도 원활하지 않았다. 방첩사는 선관위에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았다. 정보사는 서버실에 들어가 사진을 촬영했지만 서버를 비롯한 별다른 물품을 반출하지 않았다. 윤석열은 이를 방패 삼아 12월3일 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시사IN〉이 확인한 당시 현장에 투입된 복수의 계엄군 검찰 진술을 종합하면, 선관위 장악 작전은 실패하지 않았다. 특히 작전의 선봉이자 핵심인 정보사는 실질적 목표를 달성했다. 같은 날, 같은 공간에 투입된 군경 가운데 유일하게 정보사 요원들만 목표를 달성하고 철수했다. 작전 성공은 단순히 선관위 서버실 점거와 사진 촬영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그날 밤, 정보사의 ‘타깃’은 따로 있었다.
현장에 투입된 정보사 요원들은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 수사 과정에서, 작전 목적은 불분명하고 지시는 모순적이라고 회상했다. 그러나 이들의 진술 속에서 ‘말’이 아닌 ‘행위’를 좇다 보면, 선관위 투입 전 정보사의 인원 편성·장비 준비·현장에서의 작전 전개 속도·명령 전달과 보고·철수 과정 전반이 군사작전으로서 완성도와 정밀도가 상당히 높았던 사실이 확인된다. 이를 통해 현장 투입 요원들은 ‘의구심을 가지면서도’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고 신속하게 타깃을 향해 직진했다.
정보사의 작전 성공은 하룻밤 해프닝이 아니다. 군이 헌법기관(선관위) 침탈을 단순 모의했거나 시도했다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를 신호탄 삼아 실제로 작전 ‘실행에 착수’했고 ‘성공’한 국헌 문란이다. 신분을 숨기고 은밀하게 첩보와 정보를 수집하며 작전을 수행하는 정보사는, 이번 비상계엄 사태에서도 물밑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 시간을 2024년 12월3일 밤으로 돌린다. 진술의 조각을 모아 그날 밤 정보사의 선관위 장악 작전의 전말과 배후를 추적한다.
이례적이고 정밀한 군사작전 지시
“차량으로 (선관위 과천 청사) 입구에 갔는데, 차단봉이 내려져 있었습니다. 팀원 2명이 내려 경비실 안으로 갔는데 아무도 없었습니다. 버튼을 눌러 차단봉을 올렸고 차량 2대가 안으로 진입했습니다. 이후 제가 경비실 안으로 들어가 CCTV를 통해 서버실을 찾아봤습니다.”
“(차량 진입 후) ㄱ팀은 당직실이 있는 건물 좌측을 통제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ㄴ팀을 데리고 2층으로 바로 올라갔습니다. 1층에 있는 건물 안내도를 보니 2층이 정보, 전산 등으로 기재되어 있어서 서버실을 찾아 올라갔던 것입니다.”
“계엄군이 당직실에 진입하고 통제하면서 ○층 서버실이 어디냐고 집요하게 물어왔습니다. 저는 군인들이 서버실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고 의도가 불순하다고 생각해 어딘지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신관 ○층이 어디냐’고 물어봤습니다. 이 부분은 답을 안 할 수가 없어 알려줬더니 저를 감시하는 사람만 남고 전부 그쪽으로 갔습니다. 제가 서버실 위치를 말해주지 않자 어디서 파악해와서 (서버실이 있는) 신관 위치를 물어본 것 같습니다.”
12월3일 밤, 정보사 요원들의 목적지는 분명했다.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서버실이었다. 요원들은 팀별로 흩어져 움직였지만 시선은 한곳으로 향했다. 목적지 확인은 신속했고, 불필요한 움직임 없이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2024년 12월3일 정보사 현장팀이 선관위 서버실을 촬영하고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제공
정보사 요원들이 목적지로 향하는 길은 거침없었다. 청사 입구 앞, 비어 있는 경비실에 들어가 직접 차단봉을 올리고 진입했다. 선관위 당직 공무원과 민간인 파견 근무자를 만날 때마다 휴대전화를 빼앗아 전원을 껐다. 사무실 유선전화기 코드를 빼고 계속해서 당직자들을 감시하며 화장실에 갈 때도 동행했다. 선관위 내부가 통제되고 외부와 연락이 차단되는 사이, 정보사 요원들의 무전기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버실 장악 완료했습니다.” 오후 10시38분,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10분 만이었다.
이날 선관위에 투입된 정보사 요원들은 고동희 정보사 대령(이하 당시 직책)과 서 아무개 중령 및 나머지 소령 8명 등 총 10명이었다. 베테랑 영관급 장교만으로 구성됐다. 당시 요원들의 진술을 종합하면, 현장팀은 12월3일 점심시간 직후 소집명령을 받아 급조됐다. 근무지도 다르고 교류도 없어 서로 모르는 사이가 많았다.
현장팀은 문상호 당시 정보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구성됐다. 문 사령관은 12월3일 오전 10시, 고동희 대령과 서 아무개 중령을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 “소령급 인원으로 8명을 선발하라. 화요일부터 목요일 사이 야간에 긴급히 출동할 일이 있을 것이다. 그 기간 중에 장거리 출타나 휴가가 계획되어 있지 않은 인원으로 선발하라”고 지시했다. 고 대령과 서 중령의 진술에 따르면, 문 사령관은 이날 오전 임무 지시를 하면서도 “정확한 것은 잘 모르겠다”라고 했다. 상부의 지시로 훈련 또는 검열을 나갈 것 같은데, 자신도 자세한 건 잘 모른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례적인 지시였다. 불시 점검 때도 사령관이 지휘부에는 사전에 공지해왔다. 그러나 유독 이날은 정확한 장소나 내용을 알리지 않고 ‘상부’가 누군지도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현장 투입 팀도 검찰 조사에서 당시 당혹스럽고 의아했다고 진술했다. 작전 목적은 불분명하고 지시는 모순적이었다. 왜 출동해야 하며, 정확히 무엇을 하러 가는지도 모른 채 대기만 했다는 것이다. 일부 요원들이 고 대령에게 선관위로 출동한 이유를 물었고, 평소와 다른 분위기에 의구심을 가졌지만 누구도 뚜렷한 답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문 사령관의 지시를 직접 받은 현장팀 지휘관 고 대령 역시 당시 팀원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이들의 진술에서 시선을 ‘회상’ 대신 ‘행위’로 옮기면 다른 장면이 그려진다. 당시 인원 편성·장비 준비·현장에서의 작전 전개 속도·명령 전달과 보고·철수 행위 전반을 종합하면, 정보사의 선관위 장악 작전은 정밀하고 완성도가 높은 ‘군사작전’이었다.
문상호 사령관은 오전 10시, 고 대령과 서 중령에게 처음 ‘불투명한’ 임무 준비 지시를 하면서도 전투복에 야전상의, 전투모, 권총, 실탄 인당 10발 등 복장부터 무장 방식을 상세히 챙겼다. 고 대령과 서 중령은 “권총은 일반 훈련과 검열 중에도 휴대하지만 실탄까지 챙기는 일은 거의 없었다”라면서도 문 사령관에게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사령관이 검열 또는 훈련이라고 했으니 그대로 따랐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문상호 사령관은 오후 5시 고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야간에 과천 선관위 일대에서 임무가 진행될 수 있으니 준비를 해야겠다”라며 임무를 구체화했다. 정보사 현장팀 요원들의 출동 장소가 이때 처음 지정됐다. 고 대령은 문 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선발해둔 소령 8명에게 “오후 8시까지 집결하라”고 전달했다. 집결 시간에 팀원들이 모두 모이자, 함께 임무 현장 ‘지형정찰’을 위해 과천 선관위 청사로 향했다. 이후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곧장 선관위에 진입했다. 계엄 선포 직후 국회보다 빠르게 선관위에 정보사 요원들이 진입할 수 있었던 이유다.
정보사 현장팀이 선관위 진입 직전이던 오후 9시30분, 문상호 사령관은 고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위치를 확인하며 이렇게 말했다. “오늘 임무를 해야 할 것 같다. 오후 10시경 TV 언론보도를 통해 속보든 특보든 나올 텐데 그것을 보면 안다. 그 뒤에 선관위로 들어가서 출입 통제를 하고 전산실을 확보한 뒤 통제하라.”
현장팀 요원들은 출동 차량 안에서 이 지시를 듣고 놀라서 고 대령에게 “합법적인 일 맞습니까” “우리가 선관위에 들어갈 명분이 뭡니까”라고 물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그러나 이들의 진술을 모아보면, 명령에 반대하거나 거부하는 요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곧바로 ‘2인1조 4개팀(고 대령과 서 중령은 자유롭게 이동하며 현장 지휘)’을 만들며 선관위 장악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밤 10시28분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정보사 현장팀은 이를 ‘신호탄’으로 삼아 문상호 사령관에게 보고하지 않고 곧바로 선관위에 진입했다.

2024년 12월3일 정보사 현장팀이 선관위 당직 근무자의 휴대전화를 압수하고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제공
현장팀의 시선은 일제히 서버실로 향했다. 4개로 쪼개진 팀이 각자의 방식으로 찾았다. 당직자에게 묻기도 하고, 건물 안내도로 청사 현황을 파악하거나 경비실 CCTV 등으로 위치를 확인했다. 이를 통해 정보사의 서버실 장악이 비상계엄 선포 직후 단 10분 만에 이뤄졌다.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요구안을 의결한 직후 철수하는 과정에선 고동희 대령의 지시에 따라 현장 투입팀이 만들어 작전을 논의하고 현장 상황을 공유하던 단체 카카오톡방을 ‘폭파’했다. 작전의 시작부터 마지막 흔적을 남기지 않는 일까지 일사불란하고도 신속했다.
정보사가 서버실 찾았던 이유
정보사의 선관위 장악 작전에 깊숙이 들어가려면 꼭 확인해야 할 진술이 있다. 현장 요원들에게 지시를 내린, 이 작전의 꼭짓점 중 하나로 지목된 문상호 사령관의 진술이다. 작전의 전말을 알기 위해선 부하들에게 “내용은 잘 모르겠다”라면서도,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작전 준비 지시를 내렸던 그의 말을 들어봐야 한다. 검찰 역시 정보사 관계자 가운데 문 사령관을 가장 먼저 조사했다(2024년 12월9일).
“12월3일 오전 10시께, 장관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연락이 오시는데, 사실 제 위에 정보본부장님이 계시기 때문에 제게 직접 전화하실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저에게 전화로 연락해 ‘이번 주중에 1개 팀(10명) 정도를 준비시켜놓고 있어라. 임무를 부여할 수 있다’고 지시했습니다. 장관 지시를 받고 곧바로 고동희 대령과 서 중령을 불러 전달했습니다.”
문상호 사령관의 진술을 보면, 그가 12월3일 오전 부하들에게 ‘상부’라고 표현한 인물은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다. 그는 이날 하루 종일 김용현 장관에게 전화를 받으면서도 ‘계엄’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듣지 못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점심께 “오늘 밤 9시께 과천 정부청사 일대에서 대기하라”는 지시를 받았고, 오후 9시30분께에는 “언론을 보고 있으면 속보가 나올 것이다. 속보 나오는 것 확인한 다음 중앙선관위로 가서 서버실이 어딨는지 확인하고 지키고 있어라” 하는 명령을 받았으며, 이를 현장팀에게 그대로 전파만 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문 사령관에게 ‘이상함을 느끼지 않았냐’ ‘이례적인 지시가 아니었냐’고 여러 차례 물었지만 문 사령관은 “저도 의아했지만 장관님이 빈말을 할 직책은 아니기 때문에 지시를 따랐다”라고 진술했다.

2024년 12월10일 문상호 정보사령관이 국회 국방위원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거짓말이었다. 문상호 사령관은 검찰에 허위 진술을 했다. 그의 거짓말은 그가 구속(2024년 12월20일)된 이후 이뤄진 두 번째 검찰 조사(2024년 12월26일)에서 확인된다. 검찰이 문 사령관에게 통화 내역을 제시하면서다. 통화 목록을 보면, 김 장관과 문 사령관은 계엄 한 달 반 전인 2024년 10월14일과 비상계엄이 해제된 이후인 12월4일 오후 단 두 차례만 전화 통화를 했다. 문 사령관이 2024년 12월3일 오전 10시부터 하루 종일 지시를 받았다고 말한 ‘상부’는 김용현 장관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문상호 사령관은 ‘임무에 대비해 팀을 편성하라’ ‘과천 정부청사 일대에서 대기하라’ ‘속보가 나오면 선관위 서버실을 확보하라’는 등의 지시를 실제로 받고 실행에 옮겼다. 문 사령관에게 지시한 인물이 김용현 장관이 아닌 다른 인물이었을 뿐이다. 문 사령관은 검찰에 다른 인물의 이름을 김 장관으로 바꿔 말했다.
문상호 사령관에게 지시를 내린 이는 민간인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었다. 노 전 사령관은 비상계엄의 비선 문고리로,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단 내 별동 수사 조직인 ‘제2수사단’을 구성, 선관위 직원을 체포해 부정선거 의혹을 수사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는 인물이다. 문 사령관이 검찰에서 첫 조사를 받은 이후, 이와 별개로 경찰이 비상계엄 사태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노 전 사령관의 실체가 드러났다. 검찰도 별도로 노 전 사령관 관련 수사를 이어가는 과정에서 문 사령관의 허위 진술을 포착했다.
문상호 사령관은 두 번째 검찰 조사에서 뒤늦게 선관위 장악 작전의 전말을 털어놨다. 정보사 현장팀의 위법한 서버실 사진 촬영은 실제 작전 목표가 아니었다. 서버실 사진 촬영은 문 사령관 자신이 ‘궁금해서’ 지시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서버실을 장악하고 지키고 있으라는 지시를 받고, 단순히 그곳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사진을 촬영해 보내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문 사령관은 “(서버실 사진 촬영은)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지시한 것이라 고 대령으로부터 사진을 받고도 노 전 사령관에게 보내지 않았다”라고 진술했다.
선관위 서버실 불법 장악·통제도 정보사에게는 일시적 임무였다. 문 사령관은 “노 전 사령관이 12월3일 밤 11시경 제게 전화해 ‘방첩사에서 인계받으러 갈 것이다’라며 정성우 방첩사 1처장 연락처를 불러줬다. 그 간부에게 전화를 걸어 ‘출발했냐’고 물었고 ‘아직 출발하지 않았다’고 했던 게 그분과 마지막 통화였다”라고 진술했다. 문 사령관은 이후 고동희 대령으로부터 상황을 보고받으며 “방첩사에서 인수팀이 갈 것이니, 도착하면 인계해주고 철수하라고 지시했다”라고 덧붙였다.
실제 정보사가 선관위 서버를 장악한 시각, 여인형 방첩사령관은 정성우 1처장 및 간부들에게 선관위 서버 반출과 포렌식 등을 지시했다. 여 사령관의 공소장을 보면, 그는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 선관위 과천청사에 방첩사 소속 군인 투입을 지시하면서 “서버를 카피해오고, 어려우면 떼와라”고 지시했다. 다만 방첩사 요원들은 정보사와 달리 부당한 명령이라고 판단해 선관위 인근에서 진입하지 않고 대기만 했다.

비상계엄 비선 기획자로 의심받고 있는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엑스 옛 트위터 갈무리
정보사 현장팀이 선관위에 진입하기 직전 실제로 받은 임무는 따로 있었다. 문상호 사령관은 이렇게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이 비상계엄 선포가 임박한 2024년 12월3일 밤 9시30분 ‘속보를 확인하고 선관위 서버실을 확보해라’고 지시하면서, 5명의 이름을 불러줬다. 그들의 출입 여부도 확인하라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이 불러준 이름 5명은 선관위 서버를 관리하는 전산실 직원들의 명단이었다.
‘선관위 직원 5명 명단’ 진술은 고동희 대령의 두 번째 검찰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문상호 사령관의 허위 진술 사실이 드러난 날(12월26일), 정보사 선관위 장악 현장팀 지휘관인 고 대령도 검찰 조사를 받고 있었다. 고 대령 역시 첫 번째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진입 경위 전반을 설명하며, 문 사령관으로부터 선관위 직원 5명의 명단을 건네받고 이들을 추적했던 사실을 빼고 진술했다. 고 대령은 12월26일 두 번째 조사에서 뒤늦게 고백하는 사실을 인정하며 이렇게 말했다. “문상호 사령관으로부터 전산실 직원 5명 명단을 받았습니다. 함께 출동한 인원들에게 공유했고 누군가가 단체 대화방에 명단을 올렸습니다. 문 사령관이 (명단을 주면서) 특별한 목적을 고지하진 않았지만 결국에는 5명 선관위 직원들의 신병을 확보하라는 취지의 지시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문상호 사령관과 고동희 대령, 현장 투입 요원들의 진술을 종합하면, 문 사령관은 노상원 전 사령관에게 전달받은 선관위 직원 명단을 고동희 대령에게 그대로 전달했다. 고 대령은 현장팀에 명단을 공유했고, 요원 중 한 명이 정리해서 현장팀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올렸다. 이후 현장팀 요원 한 명이 선관위 진입 직후 조직도를 확보하고, 공유한 5명의 명단과 맞춰봤다. 명단 일부가 조직도에 없거나 부서 배치가 다르다는 걸 확인한 고 대령이 문 사령관에게 현장에서 입수한 조직도 사진을 보내며 보고했다. 고 대령은 선관위에서 철수하며, 이 과정 전반이 담긴 현장팀 단체 카카오톡 대화방을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2024년 12월4일 새벽 1시17분께 선관위 과천 청사 통제를 위해 특전사가 투입됐다. ⓒ헌법재판소 화면 갈무리
정보사 현장팀 보고를 받은 문 사령관은 그 내용을 그대로 다른 부하들에게 전달했다. 전달받은 부하들은 그 시각 경기도 성남시 판교에 위치한 정보사 ○○○여단 사무실에서 대기 중이던 정보사 소속 특수요원들이었다. ‘인간 병기’로 훈련받은 이들은, 부정선거 증거를 찾아내라는 노상원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아 선관위 직원들을 체포하고 자백을 받기 위해 고문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결국 정보사의 불법 선관위 장악은, 이번 비상계엄 사태에서 가장 폭력적이고 위험했던 한 작전의 연결선에 있었다. 두 갈래로 나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 명분이자 목적인 부정선거 의혹에서 출발한 단일 작전이었다. 정보사의 선관위 서버실 확보는 이 작전의 도입부에 불과했다. 본격적인 작전은 판교에 모인 정보사 특수요원들이 도착해야 시작되는 것이었다. 12·3 비상계엄 사태의 한 축인 이 작전의 실체를 확인하려면 무대를 선관위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 경기도 판교의 정보사 사무실, 그리고 안산 롯데리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