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란의 공간
12·3 비상계엄의 공간을 다시 밟는다.
그곳에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가 있다.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짧은 한마디에는 격노와 위협, 권력의 충동이 압축되어 있었다. 의미는 분명했다. ‘나를 거역하는 자는 누구도 용납하지 않는다. 거역하면 무장 계엄군이 언제든 군홧발로 짓밟을 수 있다.’
2024년 12월3일 밤, 윤석열은 모두의 기억에서 겨우 잊혀가던 ‘헌정질서 리셋 버튼’을 45년 만에 찾아 눌렀다. 대한민국의 자유와 안전, 영혼,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전면적 선전포고였다.
헌법과 상식이 공화국의 반역자를 파면했지만 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배신의 배경과 동기는 여전히 의혹으로 남아 있고, 이 사건이 어떻게 기획되고 준비되었는지, 또 주도한 인물들은 누구인지에 대한 의문도 해소되지 않고 있다.
〈시사IN〉은 시계를 돌려 비상계엄의 ‘공간’을 찾아갔다. 계엄이 모의된 대통령 안가와 국방부 장관 공관, 국무위원들이 모였던 대통령실 5층, 계엄군이 침탈한 국회, 최고 권력자의 망상과 음모론에 따라 장악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서버실, 정치인 체포조를 구성한 국군 방첩사령부, 야구 방망이와 케이블타이를 준비하고 리허설까지 했던 경기도 판교 국군 정보사령부 회의실, 그리고 그 작전이 세워진 안산 상록수역 인근이다.
공간의 조각을 모아 진실의 퍼즐을 맞췄다. 12·3 비상계엄 사태 피의자 및 참고인 60여 명의 진술조서 등, A4 용지 4000쪽 분량의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 및 경찰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 수사 기록을 확인했다. 계엄 해제 직후 나온 각 공간 속 관계자들의 생생한 진술과 수사 기록을 종합해 비상계엄의 실체적 진실을 추적했다. 그 안의 말과 행위, 침묵과 망설임까지 모두 짚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2시간짜리 경고성 계엄”이라는 윤석열의 주장은 궤변이었다. 말과 설득보다 총을 먼저 준비했고, 명분보다 체포 명단이 먼저 전해졌다. 오랫동안 치밀하게 계획했고, 실행에 옮긴 사실도 확인됐다. 당시 군이 실행한 행동의 규모와 계획 정밀도를 종합하면 국군통수권자이자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의 승인 없이는 불가능한 범위였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그날의 ‘공간’을 다시 밟는다. 그곳에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가 있다.
글: 문상현 이은기
인포그래픽: 이정현
구성: 안희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