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란의 공간
12·3 비상계엄의 공간을 다시 밟는다.
그곳에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가 있다.
“요즘은 민감한 시기” 대선 의식한 내란 혐의자
윤석열 형사재판은 12월 말까지 계속된다. 검찰은 ‘의원을 끌어내라’는 윤석열의 지시가 있었는지 우선 입증하려고 한다. 계엄 해제를 방해하려던 정황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5월26일 윤석열이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내란 우두머리 혐의 5차 공판에 참석했다.ⓒ사진공동취재단
윤석열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에 대한 5차 공판이 5월2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렸다. 제21대 대선 전 마지막 공판이었다. 이날 법원에 도착한 윤석열은 “대선 앞두고 하실 말씀 있느냐” “불법 계엄 아직도 사과할 생각 없느냐” “부정선거 영화는 왜 봤느냐”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하며 포토라인을 지나쳤다.
검찰은 재판 초기 윤석열이 ‘의원을 끌어내라’고 지시했는지를 입증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을 해제하는 방법은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뿐이다(헌법 제77조 5항과 계엄법 제11조 1항). 윤석열이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건, 비상계엄 상태를 위헌·불법적으로 유지하려고 했다는 의미다.
첫 공판이 열린 4월14일부터 4차 공판이 열린 5월19일까지, 윤석열 내란 우두머리 혐의 재판에는 조성현 대령, 김형기 중령, 오상배 대위, 박정환 준장 등 검찰이 신청한 증인 4명이 차례로 출석했다. 네 사람 모두 12·3 비상계엄 당시 국회로 출동한 수도방위사령부와 특수전사령부 소속 군인이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5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상현 전 특전사 1공수여단장의 증언도 같았다. 상황은 이렇다. 12·3 비상계엄이 선포된 2024년 12월3일 밤 11시57분경, 이상현 전 여단장의 지시를 받아 특전사 1공수 1특전대대(김형기 1대대장)가 국회로 출동했다. 이어서 12월4일 오전 0시22분 같은 여단의 2특전대대(반효민 2대대장)도 국회로 출발했다. 한편 그날 밤 국회에 가장 먼저 도착한 건 특전사 제707특수임무단이다. 707특임단 96명을 태운 헬기는 12월3일 밤 11시49분부터 12월4일 오전 0시11분 사이에 국회 운동장에 순차적으로 착륙했다. 1공수여단 병력은 그보다 늦은 12월4일 오전 0시30분, 0시36분 차례로 국회에 도착했다.
이상현 전 여단장은 이날 공판에서 “대통령이 문을 부수고 (본회의장에) 들어가라고 한다”라는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의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그 지시를 받을 무렵 1공수 병력은 국회 후문으로 진입할 시도를 하고 있었다. “이때 (윤석열이) 도구를 언급했느냐”라는 검찰의 질문에 머뭇거리던 이상현 전 여단장은 “도끼라는 단어를 들었다”라고 답했다. 검찰이 “대통령이 도끼로 문을 부수고 들어가라고 했다는 것이냐”라며 재차 되묻자, 이상현 전 여단장은 “‘도끼로라도’라고 들었다”라고 말했다.
이상현 전 여단장은 이 지시를 12월4일 오전 1시경 시민과 대치 중이던 김형기 1대대장(중령)에게 전달했다. 김형기 1대대장은 이 명령을 부대원에게 전달하지 않았다. “‘국회의사당의 주인은 국회인데 무슨 X소리냐’라고 말했던 걸 제 부하들이 들었다. 이 지시가 정당한 지시인지에 대해 옳은 판단을 하지 못했다(4월14일 1차 공판 법정 증언).” 그리고 오전 1시2분,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의원 190명 전원 찬성으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었다. 다시 5분이 흐르고, 오전 1시7분경 국회 본관 내부에 있던 1특전대대 대원들은 이상현 전 여단장의 철수 지시를 받고 본관 밖으로 철수했다.

2024년 12월10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이상현 1공수여단장(첫 줄 오른쪽). ⓒ시사IN 박미소
‘대통령이 의원을 끌어내라고 지시했다’라는 이상현 전 여단장 증언의 신빙성을 뒷받침하는 인물이 있다. 5월19일 4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박정환 특전사 참모장(준장)이다. 박정환 참모장은 법정에서 12·3 비상계엄 당시 오간 곽종근 전 사령관과 이상현 전 여단장의 통화를 직접 들었다고 증언했다. “유리창을 깨라. 문을 부수고라도 들어가라. 표결 못하도록 의원들을 끌어내라는 (곽 전 사령관의) 말이 있었다.” 그 당시 박정환 참모장은 특전사 사령부 전투통제실에서 지시를 내리던 곽 전 사령관 오른쪽에 앉아 있었다.
■ “요즘은 민감한 시기”라며 통화 재생 반대
그러자 윤석열 측 변호인은 박정환 참모장이 곽종근 전 사령관의 통화 내용을 듣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곽 전 사령관은 당시 주로 왼쪽 귀에 휴대폰을 대고 통화했는데(5월19일 박정환 참모장 법정 증언), 정작 곽 전 사령관 왼쪽에 앉아 있던 주임원사는 주변이 어수선해 들은 바 없다고 수사기관에 진술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윤석열 측 송진호 변호사가 “정확히 기억하는 것이냐, 아니면 신문 기사를 통해 추후 확인되거나 스스로 느껴진 것이냐(기억이 오염된 것 아니냐는 취지)”라고 박정환 참모장에게 따져 묻자, 그는 본인 기억이 맞다고 단호하게 답했다.
윤석열 측은 이상현 전 여단장과 박정환 참모장의 증언이 ‘재재전문진술’이라며 증거로 인정될 수 없다고 반복해 주장했다. ‘전해 들었다’는 의미의 전문(傳聞)진술은 “누가 그렇게 말하더라”고 들은 이야기를 증언하는 것을 가리킨다. 형사재판에서 전문증거는 원칙적으로 증거 능력이 없다(형사소송법 제310조 2항). 곽종근 전 사령관과 달리 이상현 전 여단장이나 박정환 참모장의 증언은 다른 사람(곽 전 사령관)을 통해 윤석열의 지시를 전해 들은 ‘전문’진술이니, 배제해야 한다는 게 윤석열 측의 논리다.
윤석열 탄핵심판 국회 대리인단 중 한 명인 김진한 변호사의 이야기는 다르다. “증인이 명령을 직접 받았고,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를 그대로 진술했기 때문에 증거능력에 문제가 없다.” 이상현 전 여단장은 “‘대통령이 의원을 끌어내라’고 말했다”라는 곽종근 전 사령관의 지시를 직접 받았고, 박정환 참모장은 곽종근 전 사령관의 통화 내용을 직접 들었다. 둘 다 직접 경험한 것을 증언했으므로, 전문진술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김 변호사는 “이상현 전 여단장과 박정환 참모장 진술의 증명력을 인정해, 윤석열이 ‘의원 끌어내라’고 지시했는지 판단하는 건 재판부의 몫이다”라고 덧붙였다.
5차 공판에서 윤석열 측은 일주일여 앞으로 다가온 6·3 대선을 의식한 듯한 모습도 보였다. 검찰 측이 이상현 전 여단장과 반효민 1공수 2대대장의 통화 녹음을 재생하려고 하자, 윤석열 측 변호인인 위현석 변호사는 “요즘은 민감한 시기”라고 반대했다. 12·3 비상계엄 작전에서 나눈 대화가 고스란히 담긴 녹음이, 윤석열이 지지를 선언한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에게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를 비친 것이다. 윤석열 형사재판은 우선 올해 12월 말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12월22일까지 공판이 25회 더 열리고, 재판부는 여기에 공판을 9회 더 추가하기 위해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검찰은 출석한 5명을 포함해 38명을 증인으로 신청한 상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