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의 공간

12·3 비상계엄의 공간을 다시 밟는다.
그곳에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가 있다.

“부하를 버렸다” 배신당한 대위의 고백

12월3일 오상배 대위는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이 탄 차량의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이 전 사령관의 비화폰에서 “끌어내라” “총을 쏴서라도”라는 윤석열의 명령이 흘러나왔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 재판을 받는 윤석열은 5월12일 3차 공판에서 처음으로 법원에 공개 출석했다. ⓒ사진공동취재단

5월12일 피고인 윤석열이 처음으로 법정 포토라인에 섰다. 4월14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 형사재판이 시작된 지 한 달 만이다. 앞서 두 차례 진행된 공판에서 지하주차장을 통해 비공개 출입했던 것과 달리 3차 공판이 열린 이날, 윤석열은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입구로 공개 출석했다. 계엄 선포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군부 정권 이후 계엄을 선포한 헌정사상 첫 대통령인데 아직 스스로 자유민주주의자라고 생각하는가” “김건희 여사 공천개입 의혹을 여전히 정치 공세라고 보나”라는 기자들의 질문에도 윤석열은 말없이 포토라인을 지나쳤다.

이날 공판에는 한 20대 육군 대위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간 헌법재판소나 국회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에 단 한 번도 등장한 적 없던 인물,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의 수행부관 오상배 대위다. 수행부관은 사령관의 일정을 보좌하는 ‘비서’ 역할을 한다.

2024년 12월3일 밤에도 오상배 대위는 평소와 다름없이 이진우 전 사령관을 수행했다. 12·3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주재로 열린 전군 주요지휘관 화상회의에 이 전 사령관이 참석할 때도, 이 전 사령관이 국회 현장으로 출동할 때도, 차 안에서 윤석열과 통화할 때도 오 대위는 그의 곁에 있었다.

“세부적인 내용을 다 기억하지 못한다.” 오상배 대위는 12·3 비상계엄 직후인 2024년 12월18일 진행된 첫 번째 검찰 조사에서 소극적으로 답했다. “불이익을 받을까 봐 두렵고, (자신이) 진술하지 않아도 다 드러날 것 같아서”다. 이틀 뒤인 12월20일 두 번째 검찰 조사에서는 달랐다. 12월3일 밤 보고 들은 걸 사실대로 진술했다. 오 대위의 마음을 바꾼 건 윤석열 측 석동현 변호사의 한마디였다. 석동현 변호사는 2024년 12월19일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전 대통령은 체포의 ‘체’자도 얘기한 적 없다”라고 말했다.

석 변호사의 발언을 보며, 오상배 대위는 “대통령이 자기 살길을 찾고 있구나(2024년 12월26일 오상배 검찰 진술)”라고 생각했다. 5월12일 3차 공판에서도 오 대위는 당시 느낀 배신감을 윤석열 앞에서 거침없이 표현했다. “대통령이 군인은 아니지만 군통수권자로서 지휘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윤석열이) 부하를 버렸다고 느꼈습니다.” 윤석열은 피고인석 2열에 앉아 눈을 감은 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 대위는 윤석열과 이진우 전 사령관이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총 4차례 통화했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두 사람 사이 통화 내역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검찰은 이날 공판에서 군 비화폰(이진우)과 경호처 비화폰(윤석열)이 ‘비화폰 모드’로 통화할 경우, 군 비화폰 서버에는 통화 내역이 남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윤석열이 계엄 당시 누구와 통화를 주고받았는지는 경호처 비화폰 서버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다는 의미다. 최근 경찰은 포렌식을 통해 경호처 비화폰 서버 기록을 복원 중이다.

두 사람 사이 통화가 오가던 당시 이진우 전 사령관은 지휘 차량(7인승 리무진) 2열 오른쪽 좌석에, 오상배 대위는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오 대위는 당시 두 사람의 대화, 차량이 머물렀던 장소를 기준으로 상황을 설명했다. 오 대위의 설명에 따르면, 첫 번째 통화는 수방사 병력이 국회에 도착했지만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뤄졌다. 윤석열은 전화를 걸어 상황이 어떠냐고 물었고, 이 전 사령관은 “다 막혀 있어서 병력에 담을 넘고 들어가라고 했다”라는 취지로 보고했다.

오전 0시35분 우원식 국회의장이 비상계엄 해제요구안 의결을 위해 국회 본회의장 의장석에 착석했다. 오 대위에 따르면 두 번째 통화에서 이 전 사령관이 “국회 본관 앞까지 병력이 갔다”라고 하자, 윤석열은 “4명이 한 명씩 들쳐 업고 나와라”고 지시했다. 윤석열의 명령은 이 전 사령관을 거쳐 오전 0시40분 “국회 본청 내부에 진입해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명령으로 조성현 수방사 제1경비단장에게 하달됐다(2024년 12월9일 조성현 검찰 진술).

윤석열과 이 전 사령관이 세 번째로 통화할 무렵, 수방사 병력은 여전히 국회 본관으로 진입하지 못한 상태였다. 윤석열은 이 전 사령관에게 “아직도 못 들어갔냐.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라”고 말했다. 이를 들은 이 전 사령관이 충격을 받은 듯 대답을 못하자 윤석열이 “어? 어?”라고 되물었고, 이 전 사령관은 작은 목소리로 “예”라고 답했다.

네 번째 통화는 2024년 12월4일 오전 1시2분 비상계엄 해제결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뒤, 5분 이내에 이루어졌다. 오 대위는 “(윤석열이) 지금 190명 들어와서 의결했다는데, 190명인지 확인되지 않았으니까 계속해라. 결의안 통과되어도 두 번 세 번 계엄하면 되니까, 너희는 계속하라는 취지였다”라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윤석열이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를 무시하고 ‘2차 계엄’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결정적 증거다.

■ ‘죄질이 아주 나쁜 내란’

오 대위의 증언이 윤석열 내란죄 성립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내란죄는 ‘대한민국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에서 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자’에게 적용되는 혐의다(형법 제87조). 윤석열 탄핵심판에서 국회 측 대리인단으로 참여했던 황영민 변호사는 “내란죄는 국헌문란 목적이나 폭동이 있었는지가 핵심 구성요건이다. 오상배 대위가 증언한 부분 자체가 헌법기관인 국회의 권한 행사를 방해한 것이기 때문에 헌법상 대의 민주주의나 권력분립 원칙에 반한다고 헌법재판소에서도 이미 판단했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공판에서 윤석열 측 변호인들은 오상배 대위가 ‘위증을 한다’며 집중 공세를 펼쳤다. 윤석열 측 위현석 변호사는 “직접 전화한 상대도 아닌데 잘못된 생각을 갖고 추측해서 (윤석열과 이진우 전 사령관 사이의) 통화 내용을 진술한 것이 아니냐”라고 따져 물었다. 이어 윤갑근 변호사는 오 대위의 ‘청력’을 문제 삼으면서 “이진우가 뒷좌석에 앉아서 귀에 휴대폰을 대고 통화했는데 어떻게 조수석에서 들었나. 일반적인 청력이 맞느냐”라고도 물었다. 오 대위는 “육군 중위(당시 계급)가 대통령의 통화를 듣는 것은 아주 이례적이다. (···) 그때 대통령님의 전화를 기억하는 것은 그중에서도 특별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윤석열 측 변호인들의 반대신문에도 불구하고, 오 대위 증언의 신빙성은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증언의 구체성 때문이다. 황영민 변호사는 “증언의 신빙성을 판단할 때, 판사는 진술이 ‘자신이 듣지 않고서는 말할 수 없는 구체적인 내용이 있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오상배 대위의 경우, 상황과 발언 내용 그리고 왜 기억하는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다”라고 짚었다. 이진우 전 사령관도 오 대위는 ‘충직한 청년’이며 “오상배 대위가 하는 말이 지어낸 거라고 생각 안 한다. 그런 거짓말 할 사람은 아니다(2024년 12월23일 이진우 검찰 진술)”라고 평가했다.

오 대위의 증언으로 12·3 비상계엄은 ‘내란의 모든 요소를 다 갖춘 행위’라는 게 밝혀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황영민 변호사와 함께 윤석열 탄핵심판에서 국회를 대리한 김진한 변호사는 “계엄군을 국회에 침입시킨 행위 자체만으로도 내란죄가 성립하는 데 문제없다. 그럼에도 이번 증언의 의미가 크다. 이 증언으로 12·3 비상계엄은 ‘죄질이 아주 나쁜 내란’이라는 것이 또 한 번 드러났다”라고 말했다.

문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