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의 공간

12·3 비상계엄의 공간을 다시 밟는다.
그곳에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가 있다.

그날 밤, 모든 군인이 소극적이진 않았다

특전사 헬기의 서울 진입 승인을 3차례 보류한 군인이 있는가 하면, 비상계엄 해제요구안이 가결된 이후에 부대 출동 준비를 지시한 군인도 있다. 12·3 당시 군 지휘부는 불법적인 비상계엄을 거부할 의지가 없었다.

2024년 12월3일 밤 비상계엄이 선포된 가운데 여의도 국회의사당 방향으로 헬기가 향하고 있다.©연합뉴스

4월4일 헌법재판소는 윤석열을 파면하면서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시킬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었으므로, 결과적으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었다는 이유로 피청구인의 법 위반이 중대하지 않다고 볼 수는 없다”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날 밤 모든 군인이 소극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박안수 육군참모총장(계엄사령관)은 그의 주장대로라도, 육군특수전사령부(특전사) 헬기가 국회로 향하도록 ‘방관’했다.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요구안 가결 이후에도 곧바로 비상계엄 해제에 따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이재식 당시 합참 준비태세검열차장(계엄사 기획조정실장)도 해제요구안 가결 이후 부대 출동 준비를 지시했다. 기억의 파편이 모일수록, 박 전 총장을 비롯한 군 지휘부는 불법적인 비상계엄을 거부할 의지가 없었다는 사실이 점점 선명해지고 있다.

12·3 비상계엄 당시 군사작전을 주도한 군 지휘부에 책임을 묻는 형사재판은 현재진행형이다. 4월24일 중앙지역군사법원은 내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를 받는 박안수 전 총장,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2차 공판을 진행했다.

■ 특전사 헬기 진입 승인한 적 없다?

이날 공판의 주요 쟁점은 12·3 비상계엄 당시 ‘특전사 헬기의 서울 상공 진입’과 ‘2차 계엄 시도’였다. 헬기 진입과 관련해 김문상 전 수도방위사령부(수방사) 작전처장, 조종래 육본 정보작전참모부장(전 계엄사 작전처장)이, 2차 계엄 시도와 관련해 이재식 합참 준비태세검열차장(전 계엄사 기획조정실장)과 권영환 전 합참 계엄과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문 전 사령관은 관련 없는 증인신문 절차에 참여하지 않겠다며 공판 시작 후 곧바로 퇴정했다.

소방 헬기를 포함한 어떤 항공기도 수방사 허가 없이는 수도권 공역에서 비행할 수 없다. 수도 방위 목적으로 ‘R75’라 불리는 비행제한구역이 서울을 둘러싸고 있어서다. 2024년 12월4일 0시11분, 김현태 단장을 포함해 특전사 제707특수임무단 부대원 96명을 태운 헬기 12대가 모두 국회의사당 운동장에 착륙했다. 그날 밤 누군가 특전사 헬기의 R75 진입을 최종 승인했다는 의미다.

군검찰에 따르면, 707특임단 96명을 태운 특전사 헬기의 긴급 비행 요청이 수방사에 접수된 시각은 2024년 12월3일 밤 10시49분경이다. 요청을 전달받은 김문상 전 수방사 작전처장은 특전사 헬기의 진입 승인을 보류해야 한다고 조백인 수방사 참모장에게 건의했다. “사전에 계획되어 있지 않았고, 비행 목적이 불분명했기 때문”이라고 김 전 작전처장은 이날 공판에서 그 이유를 증언했다.

707특임단이 출발한 경기도 이천에서 국회까지는 “통상 헬기로 15분이면 이동할 수 있는 거리(2024년 12월18일 김현태 707특임단장 검찰 진술)”다. 하지만 김문상 전 작전처장이 헬기 진입을 보류하면서 도착 시간이 지연됐다. 2024년 12월3일 밤 11시22분부터 11시43분에 걸쳐 출발한 특전사 헬기 12대가 국회 운동장에 착륙을 모두 마친 건 2024년 12월4일 0시11분이 되어서였다.

당시 김문상 전 작전처장은 세 차례 비행 승인을 보류했다. 그런데 특전사 특수작전항공단의 요청이 계속됐다. 이상하다고 생각해 합참에 무슨 일인지 문의했지만, ‘합참과는 관련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조백인 수방사 참모장에게 상황을 다시 보고했다. 조 참모장은 “계엄사령부에게 보고하고 승인을 받아라”고 지시했다(2024년 12월13일 조백인 참모장 검찰 진술). 김문상 전 수방사 작전처장은 당시 계엄사 작전처장을 맡고 있던 조종래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장(정작부장)에게 연락했다.

조종래 정작부장은 “박 전 총장에게 (특전사에서 비행) 승인 요청이 들어왔다고 말씀드렸다. 박 전 총장이 ‘알았다. 승인해라’고 답변했다”라고 이날 공판에서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이는 ‘특전사 헬기 진입을 승인한 적 없다’는 박안수 전 총장의 주장과 배치되는 증언이다. 박 전 총장은 조 정작부장의 전화를 받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그 헬기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님이 지휘하시는 헬기라고 생각했다. 육본이 수방사 지역 헬기를 통제하는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저에게 그냥 알려주나 보다 정도의 느낌으로 ‘알았다’고 한 것이다”라고 2024년 12월24일 검찰 조사에서 진술한 바 있다. 특전사 헬기가 국회로 향하도록 ‘승인’한 게 아니라 ‘그저 보고를 받은 것’이라는 주장이다.

22025년 1월14일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의 전체회의 기관보고에서 박안수 전 육군 참모총장이 출석해 답변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이와 별개로 특전사 헬기가 박안수 전 총장의 승인 없이, 무단으로 서울에 진입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재판부는 이 부분에 주목했다. 조백인 수방사 참모장이 검찰에 제출한 ‘현 상황 관련 경과’ 문건에 따르면, 특전사 헬기의 R75 진입이 확인된 시점은 그날 밤 11시31분경이다. 만약 헬기가 박 전 총장의 최종 승인을 거쳐 진입했다면, 박 전 총장의 승인 메시지는 그 전에 특전사에 전달돼야 한다.

그런데 조종래 정작부장은 “박안수 전 총장의 최종 승인을 받은 시점은 밤 11시33~34분”이라고 증언했다. 조 정작부장의 주장대로라면, 박 전 총장의 승인을 거치지 않은 채 특전사 헬기가 서울 상공에 진입한 셈이다. 군검찰이 조 정작부장에게 “본인이 임의로 (헬기 진입을) 승인한 뒤에 사후 (박 전 총장에게) 보고한 게 아니냐”라고 묻자 조 정작부장은 “나는 권한이 없다”라며 부인했다. 재판부도 박안수 전 총장이 헬기 진입 승인한 시점을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 조 정작부장과 김문상 전 수방사 작전처장에게 두 사람 사이의 비화폰 통화 시간을 수차례 물었다.

■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계엄군이, 비상계엄 해제요구안이 가결된 이후 곧바로 철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뒷받침할 증거도 이날 공판에서 드러났다. 박안수 전 총장은 2024년 12월4일 01시2분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요구안이 가결된 이후에도, 군부대에 출동 준비를 지시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국회가 계엄 해제를 요구하면 지체없이 해제해야 한다.”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요구안이 가결된 이후, 권영환 전 합참 계엄과장은 박안수 전 총장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그 말을 들은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일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라며 권 전 계엄과장을 나무랐다. 박 전 총장은 ‘어떤 일이 되게끔’ 하려는 것이었을까? 권 전 계엄과장은 “성공 여부를 떠나서 ‘계엄 관련 일이 되게 해야지’라는 뜻으로 이해했다”라고 이날 공판에서 증언했다.

당시 박안수 전 총장이 ‘되게끔 하려던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알 수 있는 정황은 더 있다. 권영환 전 계엄과장은 이재식 당시 계엄사 기조실장으로부터 ‘2신속대응사단(이하 2사단) 출동 준비 지시’를 받은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권 전 계엄과장은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요구안 가결 이후 “출동 지시가 내려오면 출동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며 2사단 출동 준비 지시를 받았다고도 말했다. 군검찰이 “(이 실장의 지시를 받은 시점이) 국회 가결 이후가 맞느냐”라고 묻자, 권 전 계엄과장은 재차 “맞다”라고 답했다.

이재식 전 계엄사 기조실장도 권 전 계엄과장과 마찬가지로 당시 ‘병력 지원 요청’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 전 기조실장은 이날 공판에서 “박 전 총장이 바쁘게 전화하면서 ‘병력 지원해달라는데 어떡하지’라고 하다, ‘2사단도 있지 않냐’고 말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박안수 전 총장이) 우연히 즉흥적으로 말한 거 같은 수준이었다. 부대 투입 말고 그냥 지금 뭐 하고 있는지 알아보라고 했다”라고 덧붙였다.

이재식 전 기조실장은 “(2사단 출동 준비 여부는)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2사단에서는 실제 출동 준비가 이뤄졌다. 2월21일에 열린 내란혐의 진상규명 관련 9차 국정조사에서 임주열 당시 2사단 201신속대응여단장은 “출동 준비는 하고 있었다. (2024년 12월4일 새벽 3시경 출동이 해제돼) 실질적으로 취침했던 시간은 새벽 4시에서 4시30분 사이”라고 설명했다. 군검찰이 이런 사실이 있었다고 따져 묻자 이 전 기조실장은 “몰랐다. 소통 오류가 있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지금 2사단이 뭐 하고 있는지 알아보라’는 박 전 총장의 명령이 어떻게 실제 출동 준비로 이어졌는지에 대해선 명확하게 답하지 않았다.

문준영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