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의 공간

12·3 비상계엄의 공간을 다시 밟는다.
그곳에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가 있다.

파면 후 첫 형사재판, 반성 없는 윤석열

4월1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5부(재판장 지귀연)에서 파면된 전직 대통령 윤석열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첫 공판이 열렸다. 파면 열흘 만에 형사법정에 선 윤석열은 여전히 국민을 향해 사과하지 않았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고 있는 윤석열(가운데)은 첫 형사재판이 열리는 4월1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차를 탄 채 들어섰다. 앞서 재판부는 윤석열의 비공개 출석 요청을 수용했다. ©연합뉴스

12·3 비상계엄에 대한 윤석열의 책임을 묻는 형사 재판이 본격 시작했다. 4월1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5부(재판장 지귀연)에서 파면된 전직 대통령 윤석열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첫 공판이 열렸다. 재판 시작 10분 전인 오전 9시50분경, 남색 정장과 붉은색 넥타이를 맨 윤석열이 법정에 들어서자 변호인단이 기립했다. 형사재판은 피고인 출석이 의무이다. 피고인 윤석열은 약 80분간 직접 발언하며 공소 사실을 모두 부인했다. 파면 열흘 만에 형사법정에 선 윤석열은 여전히 국민을 향해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윤석열은 비상계엄이 “평화적인 ‘메시지 계엄’”이라는 궤변을 반복했다. 윤석열은 “군인에게 실무장하지 않은 상태로 투입하고 민간인과의 충돌을 피하라고 지시했다. 군정을 실시하고자 하는 계엄이 아니라는 건 계엄 진행 과정을 봤을 때 너무 자명하다”고 직접 진술했다. 이어서 윤석열은 비상계엄을 “비폭력적으로 국회의 해제 요구를 즉각 수용해서 해제한 ‘몇 시간의 사건’”이라고 표현하면서 “몇 시간짜리 내란이라는 게 도대체 인류 역사상 있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진술 내내 자신이 26년간 검사 생활을 했다면서 “법을 잘 안다”는 식의 태도를 일관했다.

그러나 이는 4월4일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윤석열 탄핵소추안 인용 결정문 내용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헌법재판소는 이번 비상계엄을 겨우 ‘몇 시간의 사건’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가볍게 보지 않았다. 헌법재판소는 “중대한 위기상황을 병력으로써 극복하는 것이 비상계엄의 본질이므로, 그 선포는 단순한 경고에 그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 계엄이 ‘경고성 계엄’ 또는 ‘호소형 계엄’에 불과하다는 피청구인(윤석열)’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봤다. 정책을 추진하는 데 차질이 생겼다고 하여 비상계엄 선포를 정당화할 수도 없고, 애당초 비상계엄을 ‘경고’와 ‘호소’용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헌법재판소는 비상계엄이 몇 시간 안에 종결될 수 있었던 이유를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라고 못 박았다. 비상계엄이 금방 해제되었다고 하지만, 이는 윤석열이 의도한 결과가 아니란 것이다.

윤석열 측 변호인단은 이번 재판의 절차적 정당성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윤갑근 변호사는 “내란죄에 대한 수사권 없는 기관(공수처)에 의한 피의자(윤석열) 체포 구속이 이뤄졌다”며 공소가 기각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검찰이 제출한 증거에 대한 증거 인부가 마무리되지 않았고, 최초 지시 존부를 알 수 없는 사람들로서 최초 지시 내용이 오염되었을 개연성이 높다. 위법증거 수집 배제를 본격 증인 신문에 앞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측은 공판준비기일을 다시 지정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재판부는 “그런 말을 사전에 밝혀줬으면 명확했을 것”이라며 “위법 수집 증거는 증거 배제 결정 통해서 하기 때문에 일단 진행하겠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윤석열은 “내란 몰이 과정에서 겁 먹은 사람들이 유도에 따라 진술한 부분이 검증 없이 반영되었다”며 직접 항변하기도 했다.

오후에는 검찰 측이 신청한 조성현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장(대령)과 김형기 특수전사령부 1특전대대장(중령)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어졌다.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에게 국회 본청 내부로 진입해 국회의원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냐는 검찰 측 질문에 조성현 대령은 ‘그렇다’고 답했다. 윤석열은 눈을 감은 채 듣다가 이의 있냐는 재판부의 말에 “저 증인이 굳이 오늘 나와야 하는지, 순서에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고 끼어들었다. 김형기 중령도 “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윤석열의 내란 혐의 첫 형사재판이 4월1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419호 대법정에서 열렸다. ©연합뉴스

지귀연 재판장(부장판사)의 재판부는 과거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 때와 달리 이번 재판에서 법정 내 언론사 촬영을 금지했다. 지하 통로로 입장하겠다는 윤석열의 비공개 출석 요청도 수용했다. 재판부는 윤석열 측이 제시한 ‘위법수집 증거’론에 대한 판단도 계속 유보하고 있다.

3월24일 2차 공판준비기일에서도 “위법수집 증거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재판 진행과정에서 논란이 될 여지가 있다”며 “양측 주장을 종합해보고, 나중에 증거 배제를 결정할 수 있다”며 확답을 내리지 않았다. 헌법재판소에서는 수용했던 증거들인데도 불구하고, 윤석열 측의 ‘위법’ 주장을 기각하지 않은 채 재판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다음 공판은 기일은 4월21일 열릴 예정이다.

문준영 수습기자